「AI 기본법」의 제정과 개인정보보호‧산업발전 간 균형 과제
1. 서론
2024년에 제정되어 곧 시행을 앞둔 AI 기본법은 한국에서 인공지능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첫 번째 종합 법률이다. 이 법은 단순히 기술 개발을 촉진하는 진흥법이 아니라, 산업적 활용과 사회적 위험 관리라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주요 내용에는 인공지능의 정의와 범위, 개발·활용 단계에서의 안전성 확보, 자동화된 의사결정의 투명성과 책임성 강화, 공공과 민간 부문의 데이터 활용 체계 정립 등이 포함된다. 동시에 개인정보 침해, 알고리즘 편향, 안전성 문제 등 AI가 불러올 수 있는 사회적 위험을 제도적으로 예방할 수 있도록 감독 장치도 마련되어 있다. 따라서 AI 기본법은 기술 진흥과 인권 보호라는 상반된 목표를 하나의 법률 체계 안에서 동시에 조율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2. 개인정보보호와 산업 발전의 갈등
AI 기본법이 제정된 가장 큰 배경은 인공지능이 발전할수록 데이터 의존성이 커진다는 사실이다. 대규모 언어모델이나 이미지 생성 모델과 같은 최신 AI는 방대한 텍스트, 음성, 이미지 데이터를 학습해야 제대로 작동한다.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모델의 성능은 높아지지만, 그 안에는 이름, 위치, 기록, 신용정보 등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가 필연적으로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산업 측면에서는 데이터 접근과 활용의 자유가 곧 경쟁력으로 직결되지만, 개인정보보호 체계는 이러한 활용을 제한하고 통제한다.
결국 개인정보보호와 산업 발전은 인공지능 학습데이터라는 동일한 지점에서 충돌한다. 한쪽은 혁신을 위해 데이터를 최대한 열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다른 한쪽은 권리 보호를 위해 엄격한 제한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의 절차와 가명처리 같은 제도적 장치가 존재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여전히 법적 불확실성과 사회적 불신이 공존한다. AI 기본법은 이러한 모순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개인정보 보호를 소홀히 하면 산업의 신뢰 기반이 무너지고, 규제가 지나치게 엄격하면 혁신 자체가 위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법은 곧 데이터 활용을 통한 성장과 정보주체 권리 보장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균형점을 모색하는 장치라 할 수 있다.
3. AI 학습데이터 활용의 법적·윤리적 쟁점
AI 개발에서 학습데이터는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자원이다. 그러나 이 데이터에는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가 섞여 있을 가능성이 높아 법적·윤리적 문제를 동시에 야기한다. 법적 측면에서 가장 먼저 지적되는 것은 재식별 가능성이다. 가명처리나 익명화를 거친 데이터라고 하더라도 다른 데이터셋과 결합될 경우 특정 개인을 다시 알아낼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검색 기록과 위치 정보가 합쳐져 개인이 역추적된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또한 개인정보보호법이 전통적으로 수집, 이용, 제공이라는 선형적 과정을 중심으로 설계된 반면, 인공지능 개발 과정은 전처리, 증강, 학습, 재학습이 순환적으로 이어진다. 이 복잡한 흐름이 법률상 어디까지 개인정보 처리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부족해 기업과 기관은 실무에서 불확실성을 겪는다. 더 나아가 글로벌 클라우드 인프라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데이터가 국외로 이전되는데, 최근 한‧EU 동등성 인정으로 절차가 완화되었음에도 주민등록번호나 개인신용정보와 같은 고위험 정보는 여전히 예외로 남아 있다.
윤리적 측면에서는 학습데이터가 사회적 편향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점이 큰 문제로 꼽힌다. 특정 집단이 과소대표되거나 차별적 맥락이 포함된 데이터를 학습한 모델은 채용, 대출, 보험 심사와 같은 영역에서 차별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또한 개인정보 처리에 대한 동의는 대체로 형식적이고 포괄적인 수준에 머무르기 때문에 정보주체는 자신의 데이터가 실제로 어떻게 활용되는지 알기 어렵다. 법적으로는 동의가 존재하지만, 사회적 신뢰는 쉽게 훼손된다. 마지막으로 자동화된 의사결정의 불투명성도 심각한 문제다. 인공지능이 개인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릴 경우, 당사자는 그 과정을 이해하거나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다. 유럽연합의 GDPR은 설명 요구권과 거부권을 보장하고 있으나, 한국 제도는 이에 대한 규정이 아직 미흡하다.
4.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의 한계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고려할 때,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인공지능 시대에 적합한 규범이라고 보기 어렵다. 첫째, 법은 개인정보의 수집, 이용, 제공이라는 전통적 단계를 중심으로 규율하기 때문에 인공지능 학습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처리, 증강, 반복 학습과 같은 복잡한 데이터 처리 행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모델 파라미터에 남아 있는 정보가 개인정보에 해당하는지, 학습된 모델이 새로운 개인정보 처리 행위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규정이 없다.
둘째, 가명정보 활용 규정은 존재하지만 실질적 보호 장치는 부족하다. 대규모 데이터셋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재식별 위험이 높아지는데도, 이를 관리하기 위한 평가 체계나 기술적 기준은 미흡하다.
셋째, 자동화된 의사결정과 관련한 권리 보장 장치가 부재하다. 정보주체가 인공지능의 판단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제도적으로 명확히 보장하지 않는다면, 자동화된 알고리즘에 의해 개인의 기회가 제한되는 상황에서 적절한 대응이 불가능하다.
넷째, 국외 이전 제도는 한‧EU 동등성 인정과 같은 성과를 통해 일정 부분 완화되었으나, 일부 민감정보는 여전히 이전이 불가능하다. 더구나 동등성 인정이 3년마다 재검토되도록 되어 있어 장기적인 제도 안정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기업과 기관은 데이터 활용에 있어 불확실성과 제약을 동시에 안게 되고, 이는 AI 기본법이 의도한 산업 진흥과 개인정보보호의 균형 달성을 어렵게 만든다.
5. 정책 방향: 기술 혁신과 권리 보호의 균형
앞으로 AI 기본법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개인정보보호와 산업 발전 사이의 균형을 구체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정책적 장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법제 차원에서는 자동화된 의사결정에 대한 권리를 명확히 보장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대출 승인이나 채용 합격 여부처럼 개인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릴 때, 당사자는 그 결과를 이해하고 필요하다면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 이는 단순한 권리 선언이 아니라 실제로 행사 가능한 절차와 감독 체계를 통해 뒷받침되어야 한다. 동시에 인공지능 학습 단계에서 개인정보가 어떻게 수집되고 변형되며 재활용되는지를 구체적으로 규율하는 세부 기준이 필요하다. 현재의 개인정보보호법은 이 부분에서 공백이 크기 때문에, 학습데이터 처리 전 과정을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규정이나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야 한다.
기술적 차원에서는 프라이버시 강화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차등프라이버시는 데이터셋에 통계적 노이즈를 주입해 개별 정보의 노출 위험을 줄이는 방식이고, 연합학습은 데이터를 외부로 반출하지 않고 각 장치나 서버에 남겨둔 채 모델을 학습시키는 방법이다. 암호화 학습 기법은 데이터가 암호화된 상태에서 연산을 수행해 개인정보가 직접 노출되지 않도록 한다. 이러한 기술들은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제도적 지원과 표준화가 병행된다면 데이터 활용과 개인정보보호를 동시에 달성하는 실질적 수단이 될 수 있다.
정책적 차원에서는 개인정보 침해 발생 시 신속한 구제를 보장하는 체계가 강화되어야 한다. 한국과 EU가 마련한 공동 대응 구조는 국제 협력의 좋은 사례인데, 이를 국내 제도에 접목해 피해자가 직접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또한 가명정보 활용 절차를 정교화하고, 기업이 현장에서 준수할 수 있는 명확한 표준을 제시하는 것도 필요하다. 규제가 불명확하면 기업은 과도한 위험 회피로 혁신을 포기하게 되고, 반대로 규제가 과도하면 실질적 활용이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규제는 명확하게, 혁신은 유연하게”라는 원칙이 정책 설계 전반에 반영되어야 한다.
결국 AI 기본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개인정보 권리를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산업 발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균형 있는 규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관건이다.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고, 기술적 보완과 국제 협력을 병행할 때 비로소 인공지능 시대의 개인정보보호와 혁신이 함께 가능해질 것이다.
6. 결론
AI 기본법은 한국 사회가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를 제도적으로 정리한 첫 시도라는 점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그러나 이 법은 단순히 기술을 촉진하는 성장 전략이 아니라, 개인정보보호라는 인권적 가치를 동시에 지켜내야 하는 균형의 법제다. AI 산업은 더 많은 데이터를 원하고, 개인정보보호 체계는 그 데이터를 통제하려 하기 때문에 갈등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앞으로의 과제는 혁신과 권리 보호라는 두 목표가 서로를 소모시키지 않고, 오히려 상호 보완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다.
이미 한국은 EU와의 동등성 인정 제도를 통해 국제적 신뢰 체계에 합류했으며, 이는 글로벌 협력의 중요한 발판이 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적으로는 학습데이터 처리 과정의 불명확성, 자동화된 의사결정 통제권의 부재, 가명정보 활용 기준의 미비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여전히 많다. 법제 보완, 프라이버시 강화 기술의 적극 도입, 신속한 피해 구제와 국제 협력을 통해 이러한 공백을 메울 때 AI 기본법은 비로소 살아 있는 규범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AI 기본법의 가치는 산업적 성장과 개인정보보호라는 두 목표 중 어느 하나를 일방적으로 선택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두 목표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균형점을 찾아, 인공지능 시대에 걸맞은 지속 가능한 데이터 활용 질서를 마련하는 데 있다. 혁신은 신뢰를 기반으로 할 때만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고, 개인정보 권리 보장은 바로 그 신뢰의 토대가 될 것이다.
7. 참고 문헌
[1] “인공지능기본법의 제정에 따른 개인정보보호법과의 관계에 대한 공법적 고찰” — 홍종현, 법학연구 (2025)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3203036
[2] 유럽연합(EU),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GDPR) (2016/679)
https://eur-lex.europa.eu/eli/reg/2016/679/oj
[3]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한–EU 동등성 인정에 따른 경제적 효과 분석」
https://www.kisa.or.kr/20301/form?postSeq=31&page=1
[4] “인공지능(AI) 활용 적정화를 위한 법제도 고찰: 「AI 기본법」을 중심으로” — 신의수, 한재경, 공공사회연구 (2025)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3203036